살아가는 이야기/전원생활-자연과사람(봄여름가을겨울

가을 볕 밤염색

오 즈 2014. 10. 13. 20:08

 

/차 정금(샘이깊은물 발행인) 사진/하 지권(샘이깊은물 사진 기자)

 
 
 
 
밤의 껍질과 속껍질로
염색한 무명...

시월이면 산과 들에 곡식과 과일들이 무르익는 모습을 빛깔로 느낄 수 있다. 나무들은 노란색, 붉은색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논밭에는 누렇게 익은 벼와 붉은 수수, 노랗고 작은 알갱이들이 조랑조랑 붙은 조 들 해서 곡식들이 여러 빛깔로 조화를 이루며 서 있는 모습이 가을을 새삼 느끼게 한다.

또 발갛게 익은 사과와 누런색으로 익은 배는 보는 것만으로도 탐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성게 같은 가시뭉치의 밤송이가 입을 벌리면 윤기가 반지르르 도는 밤알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하고 참나무 가지 끝에는 상수리가 하나 둘씩 떨어지고 떡갈나무도 도토리를 떨어뜨린다. 그 나무들 밑에서 밤, 상수리, 도토리 같은 열매를 줍는 사람들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인 양 해맑고 아름답다.

이 달에는 이처럼 가을을 느끼게 하는 많은 것들 가운데서 밤으로 염색을 하려 한다.

밤나무는 참나무과에 속하는 교목성 낙엽과일나무이다. 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와 북아프리카 대륙의 온대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재배하여 온 평양밤은 중국이 원산지이다. 함경북도와 평안남도에서는 중국계의 함종밤을 많이 재배하였고 그 밖의 지역에서는 대부분 고유의 재래종을 재배하여 왔다.



밤의 재배와 쓰임새

 
밤나무는 꽃, 잎,
줄기, 열매 들 해서...

그러나 천구백오십팔년 즈음부터 밤나무혹벌의 발생으로 재래종 밤나무밭은 거의 전멸 상태에 이르렀다. 그래서 밤나무의 개량종이 필요하였고 이때 새로 개발된 내충성 품종은 경상남도의 하동, 함양, 산청, 전라남도의 광양, 보성, 구례, 전라북도의 남원, 장수 등지에서 집단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밤나무의 재배 면적은 천구백칠십오년에는 이천삼백 헥타르였던 것이 천구백팔십칠년에는 이십만 헥타르로 늘어났으며, 생산량은 칠천육백구십칠 톤에서 오만 칠천사십칠 톤으로 일곱 배나 늘어났다.

밤의 내충성 우량품종으로는 산대밤, 장위밤, 삼근생, 이평밤, 은기, 광주올밤, 중흥밤, 옥광밤, 산성밤, 백중밤 들이 있고 일본에서 들어온 품종으로는 단택, 이취, 대화조생, 축파 들이 있다. 품종에 따라 수확 시기와 내충성이 각각 다르고 단맛도 다르다. 밤나무가 자라는 데는 배수가 잘 되고 유기질이 많으며 표토가 깊을수록 좋고 산도는 약산성이면 좋다. 온도도 연평균 십 도에서 십사 도가 적합하여 우리나라 전국에서 밤나무를 재배할 수 있다.

밤나무에 대한 옛 기록을 살펴보면 지금으로부터 약 천칠백 년 전인 진나라 때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 마한조에 마한에서 배만한 밤이 난다고 기록되어 있고 <후한서>에도 마한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큰 밤을 생산하고 있는데 굵기가 배만 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수서>에는 백제에서 큰 밤이 난다고 기록되어 있고 <북사>에도 백제에 큰 밤이 난다고 하였다. 그때의 밤이 지금의 배만 했는지 아니면 배가 밤알만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기록으로 보아 큰 밤이 재배되었나 보다.

밤은 관혼상제에서 꼭 필요한 과실이었으며 집에서 삶거나 구워서 먹는 간식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밤과 쌀가루의 비율을 이 대 일로 하여 젖먹이의 이유식으로 쓰기도 했으며, 밤 경단이나 밤채 들은 고급 음식의 재료로 쓰기도 한다. 또한 눈 내리는 겨울밤 거리의 군밤장수가 파는 밤에는 아련한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따뜻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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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겉껍질과 속껍질로 하는 염색

 
밤의 겉껍질과
속껍질에는 타닌...

밤나무 목재는 단단하여 가구, 건축, 철도갱목, 버섯 재배용으로 사용되며 목재와 나무껍질에 들어 있는 타닌은 화학제품 연료로 이용된다. 이처럼 많이 들어 있는 타닌 성분 때문에 염색 재료로도 활용된다. 밤나무를 염색 재료로 쓰는 경우 밤나무 전체를 다 활용할 수 있다. 곧 밤꽃, 밤나무잎, 줄기, 나무껍질, 열매, 열매의 겉과 속껍질 모두 염색이 잘 된다. 밤꽃은 따서 끓여 염액을 만들어 염색을 하면 된다. 줄기나 나무껍질은 시월에서 십일월에 이용한다. 열매인 밤은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쓸 수 있다.

여기에서는 밤의 겉껍질과 속껍질을 활용하여 염색을 해 보았다. 밤의 겉껍질과 속껍질에는 타닌 성분이 많이 들어 있어 염색이 잘 된다. 밤 껍질을 이용하여 물을 들이면 철 매염에 의해 쥐색을 얻을 수 있는데 계속 되풀이하여 물들이면 검은 쥐색을 얻을 수 있다. 명반 또는 주석을 매염제로 쓰면 맑은 밤색으로 물이 든다.



염색 뒤의 처리

염색을 하고 나면 염액의 처리 문제가 남는다. 특히 염색할 때 쓰는 화학매염제는 수질 오염의 원인이 된다. 하지만 매염제를 쓰지 않으면 원하는 빛깔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견뢰도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매염제는 염색할 때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므로 집에서 적은 양의 염액을 써서 염색을 했을 때에도 염액이나 화학매염제를 사용한 물을 그냥 버려서는 안 된다.

염색한 뒤 염액의 처리 방법은 다음과 같다. 곧 염액이 산성일 경우에는 알칼리를 넣고 염액이 알칼리일 경우에는 산을 넣어 염액을 중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염액 속의 색소도 오염의 원인이 되므로 플라스틱 물통에 담아 며칠 놓아둔 뒤 색소가 뭉쳐 곰팡이가 되어 물 위로 떠오르면 곰팡이 덩어리만을 모아 버리고 나머지 물은 하수구에 버린다.

철, 구리, 주석과 같은 화학매염제가 물을 오염시키는 것은 이들이 금속이온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금속이온제를 썼을 경우 활성탄을 이용해 금속이온제를 흡수시켜야 한다. 활성탄은 화공약품상에 가면 살 수 있다. 또는 숯과 모래를 시루에 켜켜이 담은 다음 매염액을 부어 숯이 금속이온제를 흡수하도록 하여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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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껍질로 물들이려면

[재료]

밤 껍질 일 킬로그램, 명반 십팔 그램(또는 동 십이 그램, 철 십이 그램), 무명 또는 명주 한 필

 

[염액 만들기]

1. 밤의 겉껍질과 속껍질을 물에 넣고 세 차례 끓여낸다. 세 차례 끓인 염액의 양이 사십 리터 정도면 된다. 끓이는 방법은 그냥 물로 끓이는 방법과 탄산칼륨을 넣어 끓이는 방법 두 가지이다. 탄산칼륨을 넣을 경우 피에이치는 구로 한다.

2. 염색은 약산성에서 잘 되므로 염액에 식초를 오 시시 정도 넣어 피에이치 오 정도로 맞춘다. 탄산칼륨을 넣어 끓인 염액에는 식초를 더 넣어 피에이치 오에서 육 사이로 맞춘다.

[염색과 매염하기]

1. 약산성의 염액을 불 위에 올려놓고 온도가 육십 도 이상 되도록 데운 다음 염색을 한다. 염색을 할 때에는 천을 염액에 이십 분 이상 담가 천이 염액을 충분히 흡수하도록 한다.

2. 초벌 염색을 한 뒤 한두 번 헹구어 명반 십팔 그램을 넣은 매염액에 염색한 천을 넣어 이십 분 동안 매염한다.

3. 매염한 천을 충분히 헹구어 다시 본염색을 한다. 염색을 여러 차례 되풀이하여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염색을 하는데 하루에 세 번 이상 염색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천이 흡수하는 양이 있으므로 포화 상태가 되면 더 이상 색을 내기 어려우므로 며칠 뒤에 다시 한 번 염색을 하면 된다.

4. 매염제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명반을 매염제로 쓰면 맑은 밤색이 나오며, 동 매염을 하면 진한 밤색, 철 매염을 하면 검은 쥐색을 낼 수 있다.